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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의 주요 문화재 위치
우리 나라 보물에 대한 글을 보다가 고달사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사실 고달사는 현재 보존 되지 않은 곳이고, 고달사 터가 맞는 얘기 일것이다.
이 고달사 터에는 우리나라의 보물 4호인 <고달사지부도>가 있다.
내 눈에 고달사지부도는 그닥 관심을 가질 만한 유적은 아니였다. 다만 삼국시대의 유물이라는
점에서 특이하긴 하겠지만, 특이할만한 외형이 엿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고달사 터에 있던 다른 여러 유물 중에 특이 할만한 유적이 있었으니 원종대사 혜진탑 귀부및
이수였다.
그래서 나는 이 여행을 감수하게 되었다. 이 여행을 시작하면서 누군가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
을 갖는다. 누군지 본인은 알 것이다.
서울 외곽 순환도로를 진입하여 고달사지 터까지 1시간 40분 정도걸린다. 약 80km의 길이지만
직선 코스가 아니기에 시간이 좀 걸린다.
고달사터에 도착하면 공사장이 보인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고달사지 터를 발굴 중이기 때문이
다. 근데 너무 황당하게 파해쳐 놓고 대책이 없이 둔것을 보면 좀 어이가 없게 되어있다.
조만간에 부근을 정리하고 관광을 할 수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되어 있긴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오면 그 길을 반기는건 마을의 400년 된 보호수이다.
나무는 알고 있을까 이 곳이 왜 이리 되었는지 말이다.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보면 보물 제6호인 '원종대사 혜진탑 귀부 및 이수', 보물 제8호인
'고달사지 석불좌' 및 비석 없는 귀부 한 점이 있는 곳을 볼 수 있다.
폐허같은 발굴 현장
발굴 현장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이 '석불좌'이다.
그러나 불상은 없고 받침만 남아 있다. 딸랑 이것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서 어디론가 옮긴
것을 조심스레 추측해 볼 수 있다.
석불좌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나를 이곳으로 이끈 이유가 보인다.
그렇다. '원종대사 혜진탑 귀부 및 이수'가 보이는 것이다. 역시 내 기대를 져 버리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거북상과는 다른 모습을 가진 이 조각상이 참 신기롭기 그지 없다. 몸통은
거북이되 머리는 용의 험상궂은 머리를 가지고 있다 앞발의 발톱으로 무장하여 억세게 보이는
모습은 비석을 이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안정되고 충실하게 보였으리라 생각된다.
(1915년 넘어져 8조각으로 깨진 비신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서쪽회랑에 보관되어 있다.)
비신이 깨진 이유는 도굴꾼들이 훔쳐가다 걸려서 깨진 것으로 알고 있다.
지정번호 | 보물 제6호 |
지 정 일 | 1963. 1.21 |
시 대 | 고려975(광종26) |
소 재 지 |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419-3 |
이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작은 거북의 문화재 한점을 볼 수 있는데. 머리가 잘리고 비신이
통채로 없어진 이 유물은 가치가 없는듯 어느 곳에서도 보호 리스트에 올라가 있지 않다.
전체적인 터를 보기위에 언덕 부분으로 올라가서 터를 바라다 보았다.
앞의 세점의 유물이 보이며 터가 상당히 넓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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