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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5월 26일 사적 제207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金谷洞)에 소재한다. 같은 능역에 있는 고종의 아들 순종과 순종비의 유릉(裕陵)과 동일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명성황후는 1897년 서울특별시 청량리 홍릉에 묻혔다가 1919년 고종이 죽자 지금의 자리로 천장하였다. 능제는 유릉과 마찬가지로 종래의 제도와 달리 특이하게 명나라 태조의 효릉(孝陵)을 본떴다. 즉, 종래의 정자각(丁字閣) 대신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寢殿)을 세웠고 그 앞 양쪽으로 문무석(文武石)을 세웠으며, 이어 홍살문까지 기린·코끼리·해태·사자·낙타·말의 순서로 석수(石獸)를 세워놓았다.
문석(文石)은 건릉(健陵)·수릉(綏陵)의 문석처럼 복두(幞頭) 대신 금관을 쓰고 있으며, 대체로 조선왕릉 석인의 전통적인 수법으로 만들었다. 장명등(長明燈)은 사각실(四角室) 형식이나, 대석(臺石)의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병풍석(屛風石)에는 경기도 화성군에 있는 장조(莊祖)의 융릉식(隆陵式)의 연화(蓮花) ·모란무늬를 조각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새로운 능제는 모두 나라가 망한 뒤에 이루어진 것이기에 조선 능제의 발전상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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